[뉴스의 맥] 현실 경제를 읽는 지름길 행동경제학

입력 2017-10-31 18:12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 정책효과 높인다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에 기반, 비합리적 경제행위 설명
정책효과를 높일 도구로 활용…마케팅에 다양하게 접목
복거일 "행동경제학의 인간도 '합리적' 존재"…논쟁 불러

이은경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 >



올해 노벨경제학상이 행동경제학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쌓은 리처드 세일러 미 시카고대 교수에게 돌아가자 행동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경제학에 접목시켜 전통 경제학에서 예측하는 것과 다른 현상들을 설명한다. 전통 경제학에서 가정한 인간은 완벽한 합리성을 가지고, 완전 정보하에 자기 이익만 극대화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을 가지며, 생애 전체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현재 만족감을 높이는 것을 선호하고, 다른 이의 행복도 감안하는 호모 사피엔스로서 더 현실성 있는 인간을 가정한다.

따라서 세일러 교수는 전통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경제주체를 이콘(econ)이라 부르고, 행동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을 휴먼(human)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이콘은 영화 ‘스타트렉’의 주인공인 이성적이고 냉철한 스팍에 비유하고, 휴먼은 미국의 TV 시리즈 ‘심슨가족’의 주인공인 덜 똑똑하고 의지력이 약하며 다른 이들도 보살피는 착한 호머 심슨에 비유했다. 이와 관련 사회평론가 복거일 씨는 “세일러 교수는 주류 경제학이 상정하는 경제인, 즉 필요한 정보를 모두 알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존재는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해왔지만 그의 ‘넛지’는 사람이 늘 합리적이라는 전제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본지 10월30일자 A37면 참조

전통 경제학에서 개인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의 한도 내에서 효용을 극대화하는 소비를 결정한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에서 개인은 전체 예산을 고려하기보다 항목에 따라 예산을 나누고 각각의 계정을 독립적으로 운영해 소비량을 결정한다. 즉 예산을 월세, 공과금, 휴가비, 의류비 등 여러 개의 주머니(계정)에 별도로 나눠 놓고 월세가 모자라더라도 휴가비 주머니에 있는 돈을 끌어다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대출을 받는다. 이런 현상을 세일러 교수는 심적 계정(mental accounting)이라 부르고,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으로 인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전통 경제학의 예측과 다른 설명

심적 계정에서 중요한 것은 계정마다 다른 준거점이다. 개인은 어떤 준거점과 비교해서 소비를 결정하게 된다. 준거점은 과거에 구입한 가격일 수도 있고 인터넷 검색에서 본 인터넷 최저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전통 경제학에서는 물건에 대한 가치가 가격을 웃돌면 소비자 잉여가 발생하므로 구입하게 되지만, 행동경제학에서는 소비자 잉여가 발생하더라도 그 가격이 준거점(인터넷 최저가 등)보다 높으면 구입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회적 선호 현상은 공정성에 대한 선호로 설명한다. 전통 경제학의 수요·공급 이론에 따르면 시장에 수요나 공급 충격이 나타나면 물건의 가격이나 임금이 조정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 경제에서 보면 가격이나 임금의 조정이 어렵기 때문에 상품의 품귀현상이나 실업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폭우가 쏟아져서 우산 수요가 늘었을 때 전통 경제학에서는 균형 가격 상승으로 수급이 일치하게 되겠지만, 현실에서는 우산 가격을 올리면 상점 주인이 비난을 받기 때문에 우산 가격은 유지되고 품절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적 툴은 마케팅 기법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은 실제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손실로 인식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 반해 기회비용은 발생할 수 있는 이득으로 인식해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어 새 차 가격이 200달러 인상됐을 때 정가 인상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할인이 없어졌다고 하면 덜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복권 판매 시 소수의 당첨자를 과대 포장해 선전하고 수많은 비당첨자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는 것이라든지, 하나 사면 하나 더 준다는 1+1 판매방식도 소비자의 심리를 활용해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하는 방법이다.

'넛지'로 대중적 관심 촉발

2015년 발간한 저서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Misbehaving)》에서 소개한 구조화 효과(framing effects)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또 다른 일화는 다음과 같다. 세일러 교수가 코넬대 비즈니스 스쿨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MBA 수업에서 첫 중간고사를 치러야 했다. 변별력이 있도록 시험문제를 출제했고, 중간고사의 반평균은 100점 만점에 72점이었다. 어차피 상대평가라서 점수 자체는 의미없다고 미리 설명했는데도 학생들은 시험문제가 너무 어렵고 평균이 낮다며 불만이 높았다. 그래서 세일러 교수는 그 다음 기말시험에서는 총점을 100점이 아니라 137점으로 만들고, 조금 더 어렵게 출제했다. 기말고사의 반 평균은 96점, 퍼센트로 환산하면 70%로 중간고사 평균인 72%보다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자신이 얻은 시험점수에 모두 만족해했다.

행동경제학이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계기는 2008년 발간된 저서 《넛지(Nudge)》를 통해서다. 넛지는 직역하면 ‘팔꿈치로 살짝 옆구리 찌르기’라는 뜻이지만, 세일러 교수와 캐스 선스타인 시카고대 법학과 교수가 함께 쓴 책에서는 자유주의적 간섭주의, 즉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정부는 장기적 관점에서 개인의 후생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개인의 선택을 유도하되(간섭주의 부분), 개인의 선택을 강제하거나 선택의 종류를 제한하지 않는다(자유주의 부분).

자유주의적 간섭주의의 핵심은 초기 디폴트(기본 설정) 옵션을 잘 설계해 제시함으로써 개인이 올바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퇴직연금 저축을 장려하기 위한 자동가입 정책이다. 개인의 은퇴 후 생활에 대비하기 위해 퇴직연금 가입을 늘리고 저축액을 늘려야 하는데, 이를 돕기 위해 미국 정부는 스마트 프로그램 가입을 장려했다. 스마트 프로그램은 근로자가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이상 퇴직연금에 가입 및 임금 인상에 연금기여율 인상이 연동되는 프로그램에 자동 가입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마케팅에서도 흔히 활용된다. TV의 유선 채널을 한 달간 무료 제공하고 한 달 후 원치 않으면 직접 전화해서 해지 의사만 밝히면 바로 해지도 가능하다고 안내한다. 그러나 인간의 특성상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전화 한 통, 서류 한 장이라는 작은 비용을 치르는 것도 귀찮아하기 때문에 마케팅 트릭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효과 큰 '정책적 툴' 제공 기대

한때 행동경제학은 전통 경제학을 부인하는, 주류 경제학의 이단자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행동경제학은 전통 경제학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들에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반영해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영역으로 성장해왔다. 사실 경제학은 여러 세부분야로 구분하긴 하지만, 이 중 인간의 행동이 포함되지 않은 분야는 하나도 없다. 따라서 분석 편의를 위해 행동경제학적 가정을 하거나 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이런 가정들은 전통 경제학의 다른 가정들과 마찬가지로 연구자의 선호에 따라 선택 가능한 가정 중의 하나일 뿐이다.

즉 전통 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을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또 설계만 잘 하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도 정책효과가 큰 정책적 툴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많은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은경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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